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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force and the dign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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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들이 살아가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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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1st

나의 사람들

 


 

 

1

  이게 뭐지? 누군가가 말했다. 뭔가 파묻혀 있어, 이리 와서 좀 봐 봐.

  뭔데? 그 이야기를 들은 사람 하나가 긴 연장을 꺼내 들고 그곳에 가까이 다가갔다. 땅바닥의 진흙이 단단하게 말라비틀어져서 틈새로 연장 끄트머리를 욱여넣는 것조차 버거웠다. 대여섯 번이나 땅을 쑤셔서 표면이 얼기설기 들뜨게 만든 후에야 흙을 조금씩 치울 수 있었다. 그렇게 무언가 볼록하게 묻혀 있는 곳 주위의 진흙을 파내길 여러 번, 이윽고 어떤 물건의 머리 부분이 드러났다.

  드로이드잖아? 누군가 어렵지 않게 알아냈다.

  드로이드라고?

  이건 알세븐 유닛이야. 드로이드에 대해서 그다지 잘 아는 것도 아닌 사람이 아는 척을 했다. 반구형의 머리, 빛바랜 연두색의 도색, 다닥다닥 붙어 있는 센서들과 카메라 등의 입력 장치들. 확실히 그랬다. 구 공화국 시기의 유물. 아스트로멕 드로이드지.

  작동이 될까?가까이서 카메라 렌즈 부분을 들여다보던 사람이 말했다. 작동이 된다면 꽤 좋은 값을 받을 수 있을 텐데.

  진흙을 파내던 사람은 묵묵히 자기 할 일만 했다. 덕지덕지 묻은 진흙 얼룩 사이로 드로이드 몸체 부분의 원통 모양이 얼추 드러나고 있었다. 어쩌다 이게 여기에 묻히게 된 거지? 추락한 엑스-윙에서 떨어져 나온 건가? 그렇다면 주변에 같이 묻힌 엑스-윙 전투기가 있어야 할 게 아닌가. 주위를 아무리 둘러봐도 엑스-윙은커녕 전투기 부품 하나조차도 눈에 띄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그렇지만 드넓은 우주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제법 자주 일어났기 때문에 아무도 드로이드의 정확한 출신에 대해서는 따지고 들지 않았다. 그게 그들이 살아가는 방식이었다. 과거에 대해서는 묻지 말 것. 그들은 영웅이 아니라 해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때, 땅에 박힌 드로이드의 '다리' 부분이 미처 다 빠져나오기도 전이었다. 바로 곁에서 드로이드 발굴 작업을 지켜보고 있던 사람이 그것의 전원 버튼을 냅다 눌러 버렸다. 알세븐 유닛 특유의 작동음이 울려 퍼지자, 아주 짧은 시간 동안 그것을 둘러싸고 있던 사람들 사이에 적막이 흘렀다. 

  우와. 누군가 바보 같은 탄성을 뱉었다. 드로이드의 머리 부분이 빙그르르 돌았다. 동시에 경계심 가득한 기계음도 냈다. 자신이 어디에 처박힌 건지 알아내기 위한 몸짓인 듯했다.

  킥스, 해석 좀 해 봐. 킥스라고 불린 남자가 손에 지렛대를 들고 얼빠진 듯이 서 있다가 드로이드의 머리 위에 흙투성이인 손을 얹었다. 드로이드의 머리가 좌우로 조금씩 움직이더니 마침내 그것의 정면 카메라가 남자의 얼굴을 향했다. 킥스? 남자는 이내 손을 들어 동료들에게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다음 순간, 드로이드가 기다렸다는 듯이 멋대로 허공에 무언가 영사하기 시작했다.

  흠, 흠. 홀로그램에 나타난 사람이 헛기침을 두어 번 했다. 그는 백발이 가득한 노인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는 대머리였지만 수염이 설산 같은 흰빛이었다. 그는 어딘가에 누운 채로 영상을 녹화한 듯했다. 킥스라고 불린 남자는 여전히 드로이드 머리에 손을 짚고 서서 그 상을 아주 자세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마치 그게 누구인지 가늠이라도 하듯이.

  보시다시피, 몸이 아주 좋지 않습니다. 그러니 발음이 정확하지 않거나, 잘못된 단어가 있어도 부디 이해를 부탁드립니다. 그런 부탁을 하는 것 치고 노인의 말씨는 아주 자연스럽고 명료했다. 마치 군인처럼.

  나는 클론입니다.

  그 순간, 드로이드를 에워싸고 홀로그램 영상을 지켜보던 사람들의 고개가 모두 한 남자에게로 향했다. 그래, 바로 '킥스'에게로 말이다. 킥스는 지렛대로 손을 고이고 있다가 그만 그걸 놓쳐 버렸다. 그의 얼굴에는 당황한 빛이 역력했다.

  형제 한 명이 우리의 사고를 마음대로 억제하고 조종하는 생체 칩의 존재를 깨닫게 해 준 뒤로, 나는 평생 동안 우리로 하여금 그 불행을 짊어지게 한 이들에 대항해 싸워 왔습니다. 킥스의 눈동자에 이채가 돌았다. 그러면서도 그는 여전히 영상 속 '클론'의 면면을 샅샅이 탐색하고 있는 듯한 눈치였다. 만약 이 메시지를 보고 있는 당신 또한 클론이라면, 킥스의 눈동자가 위태롭게 흔들렸다. 나잖아. 그는 한때 덥수룩한 머리털 속에 묻어 버렸던 자신의 진짜 정체성을 마침내 기억해 냈다. 클론. 당신 또한 나처럼, 당신 스스로가 최선이라고 여겼던 여러 선택들의 끝에 지금 여기 도달해 있는 거겠지요.

  어이, 클론. 누가 키득거리며 속삭였다.

  조용히 해. 킥스가 으르렁댔다.

  우리 모두에게는 선택권이 있습니다. 설령 우리 클론 인생의 시작도 끝도 마음대로 되지 않았을지언정, 노인이 숨을 한 차례 깊게 들이마셨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의지로 공화국과 자유를 위해, 혹은 삶이나 다른 무언가를 위해서, 목숨 바쳐 싸웠습니다. 누가 반박하려 든들 문제될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누가 우리를 알겠어요? 아무도 우리와 같지 않은데 말입니다. 우리는 단지 우리일 뿐입니다. 그런 우리가, 이 우주의 역사에서 가장 고된 시기 중 하나를 살아냈습니다. 그러니까 앞으로도, 계속……. 킥스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그는 그걸 얼른 닦아냈다.

  살아남으십시오. 강하게, 사람답게 말입니다. 은하 저편의 먼 곳에, 내가 아직 만나지 못한 살아남은 형제가 있다면 이 말을 꼭 전해 주고 싶었습니다. 계속해서 살아남으십시오. 살아남아서…… 우리가 얼마나 군인다웠는지, 또 사람다웠는지를, 노인은 울먹이고 있었다. 잔기침이 두어 번 이어졌다. 온 우주에 알리십시오.

  홀로그램이 고요해졌다. 노인의 부드러운, 그러나 힘 있는 목소리가 거기서 끊어지는 듯했다. 그렇게 킥스가 영사되는 상으로부터 먹먹해진 시선을 치우려던 찰나, 언제나, 스가 당신과 함께하기를. 그리고, 렉스, 이상.

 

 


 

 

2

  저는 마스터 오비완 케노비입니다. 안타깝게도 제다이 기사단과 공화국은……

  렉스는 언젠가 오비완 케노비가 남긴 제다이 홀로크론을 본 적이 있다. 영사된 홀로그램 속의 그는 늘 그랬듯 담담한 어조로 '경고이자 조언'을 전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녹음될 당시의 상황을 직접 겪었던 렉스는 그 침착한 메시지에 담긴 절박함을 알았다. 어쩌면 지금이 바로 그런 절박한 상황일지도 몰랐다. 이 세상에 나의 무엇을 남겨야 할지 마지막으로 고민해야 할 때. 무엇을 남긴다는 건 클론들에게는 허용되지 않는 일이었다. 여태 그래 왔다. 백골은 이름도 영예도 없이 전장에 뒹굴었고, 무구들은 재활용되거나 고물상들이 주워 갔다. 설령 우연히 무언가를 남기게 되었다고 해도 그건 그들이 몸 바쳐 일하는 공화국의 것이어야지, 자신이나 특정한 사람을 위해서일 수는 없었다.

  그리고 지금, 클론 렉스는 아직까지 삶을 위해 싸우고 있을 그의 형제들을 위해 무언가를 남기려고 한다. 이 신호를 읽어낼 그의 사람들에게, 이 우주의 어딘가 자신과 같은 의지를 가지고 태어나 스스로의 선택으로 인한 삶을 이어 나갔던 사람이 분명 존재했음을 알리기 위해서. 그건 곧 그 자신을 위한 유언이나 마찬가지였다. 포스가 당신과 함께하기를. 언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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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1st

임무는 자유

  “파이브스가 칩에 대해서 경고하려고 했었지만,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지.” 렉스가 말했다. “실은 지금도 믿기지 않아.”¹
  그때 나는 렉스의 뒤를 바짝 따라서 걷고 있었다. 옛날으로 돌아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걷고 있으면 꼭 하이퍼스페이스를 반대로 지나 옛날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 닳고 닳은 클론 군장이 한때 뭐였는지 모를 고철 덩어리에 부대끼는 소리가 울렸다. 렉스의 견갑에 칠해진 파란색 페인트는 예전보다 더 바래서 물빛이 되어 가고 있었다. 나는 거기서 무엇도 더 묻지 않았다. 그리고 그 후로 렉스는 나와 99 대원들 앞에서 파이브스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꺼내지 않았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렉스는 우리를 잘 알았다. 리쉬 문 초소 전투 이후로 우리는 곧잘 함께였으니까, 파이브스가 내게 억제 칩의 존재를 규명해 낸 클론 그 이상의 존재였다는 사실도, 내가 '죽기' 전까지 파이브스와 얼마나 가깝게 지냈는지도. 나도 그 사람도 헬멧을 쓰고 있었으니 정확한 건 알 수가 없었지만(맨얼굴이었다면 그의 무엇이든 제법 정확하게 맞힐 수 있었을 거라는 소리다) 내가 아는 그의 성정에 의하면 내게 파이브스 이야기를 꺼낸 순간 그는 조금 후회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내가 파이브스의 근황에 대해서 되묻지 않기를 조마조마하게 바랐을 것이다. 그리고 그게 맞다면 나는 다행히 그의 바람대로 행동한 것일 테다. 슬픈 가정들의 병렬. 그 끝에는 확정된 결론 하나만이 놓여 있었다.
  나는 파이브스의 죽음을 실제로 목격한 적도, 전해 들은 적도 없기 때문에 도리어 그가 죽어 가는 광경을 마음대로 상상할 수 있다. 무의식이 만들어 낸 환영 속에서 그는 미완성된 문장들 사이로 몸부림치고, 신음하다, 끝내 결코 달갑지 않은 최후를 맞는다. 아무렴 그렇지, 파이브스는 '군인'이었으니까 생보다 죽음을 평온하게 받아들였을 리 없다. 덧없는 생이라도 기워 나갔어야지. 또 다시 싸울 내일을 기약하면서……. 본 적이 없는 걸 사랑하는 것은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죽어 버린 걸 기억하는 것 같다. 파이브스도 이런 느낌을 알았을까, 나는 그의 마음만을 상상할 수 없다. 지금도 예전에도 그랬던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죽음이 아니라 단지 삶이 우리 둘을 갈라놨던 거라고.

 

¹스타워즈: 배드 배치, 시즌 1 7회, "상흔," 브래드 라우, 제니퍼 코벳, 2021.06.11, 디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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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1st

접근 불가

  파이브스는 우리가 드로이드가 아니라 사람이라고 힘주어 말했지만 나는 가끔 내가 차라리 드로이드였다면 더 좋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원하지 않거나 비효율적이거나 하여튼 썩 이상적이지 않은 생각들이 회선을 타고 흐르기 전에 잘라내 버릴 수 있었을 테니까. 옛일을 떠올리고 싶지 않아서 머리카락이며 수염을 길게 길렀는데도 어쩔 수 없이 과거의 상념에 끌려들어가 버리는 때가 있다. 생각해 보면 머리를 아주 짧게 유지하는 건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었다. 제시와 나는 여유가 생기면 잡초처럼 삐죽삐죽하게 자란 머리카락을 잘라 없애는 데 시간을 보냈었다. 우리는 이발병 대신 서로의 머리를 깎아 주기도 했다. 내가 그의 머리카락을 다듬어 줄 때 나는 내 뒤통수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 수 있었다. 뒤통수를 만지는 것뿐만이 아니라 두 눈으로 볼 수도 있었다. 보통 사람들은 평생 해 보지 못할 경험이었다. 우리에게는 아주 당연한 일이었지만 말이다. 그런 것들이 우리 클론 병사들에게는 많이 있었다. 이를테면 서로 이름을 붙여 주는 행위가 그랬다.
  모든 사람들에게는 태어나면서부터 이름이 있다. 클론들은 이름 대신 번호를 가지고 태어난다. 게다가 모든 '공식적인' 호명은 번호로 이루어진다. 조금 자라면 스스로 이름을 짓거나, 유일한 친구들인 형제들로부터 불리는 별명이 그대로 이름이 된다. 평범한 사람들에게도 별명은 있지만 우리에겐 별명이 곧 이름이다. 내 경우에는, 사실 부끄럽게도 내가 왜 킥스라고 명명되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수염이 덥수룩하게 자란 내 얼굴 속에서 멀어진 형제들의 모습처럼 그냥 잊어버리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내가 그들이 남긴 유일한 흔적이라는 건 지나치게 괴로운 역설이다. 내가 죽으면 이제 더 이상 내 형제들을 기억할 사람이 없으리란 사실은 떠올릴 때마다 기분이 이상하다. 나는 클론 전쟁이 끝나고 몇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데 말이다. 사람들은 잘 때만 꿈을 꾸지만 내게는 살아있는 것이 오히려 꿈속을 거니는 듯이 느껴진다. 팔을 움직이면 파이브스가 약속 장소의 좌표를 내게 남길 적의 압력이 완갑에 고스란히 와닿는다. 제시를 마지막으로 본 건 언제였더라? 글쎄, 나는 제시나 렉스가 어떻게 죽었는지 알지 못한다. 영영 모를 것이다. 그리고 그러는 편이 나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내 앞에서 동료 병사가 죽어 버리는 것보다 더 두려운 일이 있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뒤늦게 깨닫는다.

  의무병에게는 치료할 부대원들이 아무도 남아있지 않아서, 의무병은 스스로를 치료할 수 없다. 의무병인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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