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브스가 칩에 대해서 경고하려고 했었지만,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지.” 렉스가 말했다. “실은 지금도 믿기지 않아.”¹
그때 나는 렉스의 뒤를 바짝 따라서 걷고 있었다. 옛날으로 돌아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걷고 있으면 꼭 하이퍼스페이스를 반대로 지나 옛날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 닳고 닳은 클론 군장이 한때 뭐였는지 모를 고철 덩어리에 부대끼는 소리가 울렸다. 렉스의 견갑에 칠해진 파란색 페인트는 예전보다 더 바래서 물빛이 되어 가고 있었다. 나는 거기서 무엇도 더 묻지 않았다. 그리고 그 후로 렉스는 나와 99 대원들 앞에서 파이브스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꺼내지 않았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렉스는 우리를 잘 알았다. 리쉬 문 초소 전투 이후로 우리는 곧잘 함께였으니까, 파이브스가 내게 억제 칩의 존재를 규명해 낸 클론 그 이상의 존재였다는 사실도, 내가 '죽기' 전까지 파이브스와 얼마나 가깝게 지냈는지도. 나도 그 사람도 헬멧을 쓰고 있었으니 정확한 건 알 수가 없었지만(맨얼굴이었다면 그의 무엇이든 제법 정확하게 맞힐 수 있었을 거라는 소리다) 내가 아는 그의 성정에 의하면 내게 파이브스 이야기를 꺼낸 순간 그는 조금 후회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내가 파이브스의 근황에 대해서 되묻지 않기를 조마조마하게 바랐을 것이다. 그리고 그게 맞다면 나는 다행히 그의 바람대로 행동한 것일 테다. 슬픈 가정들의 병렬. 그 끝에는 확정된 결론 하나만이 놓여 있었다.
나는 파이브스의 죽음을 실제로 목격한 적도, 전해 들은 적도 없기 때문에 도리어 그가 죽어 가는 광경을 마음대로 상상할 수 있다. 무의식이 만들어 낸 환영 속에서 그는 미완성된 문장들 사이로 몸부림치고, 신음하다, 끝내 결코 달갑지 않은 최후를 맞는다. 아무렴 그렇지, 파이브스는 '군인'이었으니까 생보다 죽음을 평온하게 받아들였을 리 없다. 덧없는 생이라도 기워 나갔어야지. 또 다시 싸울 내일을 기약하면서……. 본 적이 없는 걸 사랑하는 것은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죽어 버린 걸 기억하는 것 같다. 파이브스도 이런 느낌을 알았을까, 나는 그의 마음만을 상상할 수 없다. 지금도 예전에도 그랬던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죽음이 아니라 단지 삶이 우리 둘을 갈라놨던 거라고.
¹스타워즈: 배드 배치, 시즌 1 7회, "상흔," 브래드 라우, 제니퍼 코벳, 2021.06.11, 디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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