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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1st

접근 불가

  파이브스는 우리가 드로이드가 아니라 사람이라고 힘주어 말했지만 나는 가끔 내가 차라리 드로이드였다면 더 좋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원하지 않거나 비효율적이거나 하여튼 썩 이상적이지 않은 생각들이 회선을 타고 흐르기 전에 잘라내 버릴 수 있었을 테니까. 옛일을 떠올리고 싶지 않아서 머리카락이며 수염을 길게 길렀는데도 어쩔 수 없이 과거의 상념에 끌려들어가 버리는 때가 있다. 생각해 보면 머리를 아주 짧게 유지하는 건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었다. 제시와 나는 여유가 생기면 잡초처럼 삐죽삐죽하게 자란 머리카락을 잘라 없애는 데 시간을 보냈었다. 우리는 이발병 대신 서로의 머리를 깎아 주기도 했다. 내가 그의 머리카락을 다듬어 줄 때 나는 내 뒤통수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 수 있었다. 뒤통수를 만지는 것뿐만이 아니라 두 눈으로 볼 수도 있었다. 보통 사람들은 평생 해 보지 못할 경험이었다. 우리에게는 아주 당연한 일이었지만 말이다. 그런 것들이 우리 클론 병사들에게는 많이 있었다. 이를테면 서로 이름을 붙여 주는 행위가 그랬다.
  모든 사람들에게는 태어나면서부터 이름이 있다. 클론들은 이름 대신 번호를 가지고 태어난다. 게다가 모든 '공식적인' 호명은 번호로 이루어진다. 조금 자라면 스스로 이름을 짓거나, 유일한 친구들인 형제들로부터 불리는 별명이 그대로 이름이 된다. 평범한 사람들에게도 별명은 있지만 우리에겐 별명이 곧 이름이다. 내 경우에는, 사실 부끄럽게도 내가 왜 킥스라고 명명되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수염이 덥수룩하게 자란 내 얼굴 속에서 멀어진 형제들의 모습처럼 그냥 잊어버리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내가 그들이 남긴 유일한 흔적이라는 건 지나치게 괴로운 역설이다. 내가 죽으면 이제 더 이상 내 형제들을 기억할 사람이 없으리란 사실은 떠올릴 때마다 기분이 이상하다. 나는 클론 전쟁이 끝나고 몇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데 말이다. 사람들은 잘 때만 꿈을 꾸지만 내게는 살아있는 것이 오히려 꿈속을 거니는 듯이 느껴진다. 팔을 움직이면 파이브스가 약속 장소의 좌표를 내게 남길 적의 압력이 완갑에 고스란히 와닿는다. 제시를 마지막으로 본 건 언제였더라? 글쎄, 나는 제시나 렉스가 어떻게 죽었는지 알지 못한다. 영영 모를 것이다. 그리고 그러는 편이 나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내 앞에서 동료 병사가 죽어 버리는 것보다 더 두려운 일이 있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뒤늦게 깨닫는다.

  의무병에게는 치료할 부대원들이 아무도 남아있지 않아서, 의무병은 스스로를 치료할 수 없다. 의무병인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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